지금부터 꼭 500년 전에 이탈리아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
모나리자'를 그렸다. 너무 잘 알려진 그림이라 설명은 줄인다. 그런데 이 그림이 어떤 경로로 지금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됐는지 자세한 사정을 나는 잘 모른다.
상식을 알려주는 검색에 들어가 보니 '다빈치가 프랑스의
프랑 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았을 때 이 미완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었는데, 왕에게 4000에큐에 팔려 퐁텐블로성(城)에 수장됐다'고 나와 있다. 사실이라면 분명 다빈치가 돈을 받고 팔았고, 산 사 람이 프랑스 왕이므로,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루브르로 들어갔다 고상상할 뿐이다. 소유권에 관한 한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1911년에 발생한 희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은 이것이 그렇게 간단치만 않음을 보여준다. 철통같은 루브르의 경비망을 뚫고 바로 이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이다. 범인은 2년 뒤에 잡혔 다. 그는 루브르에서 인부로 일했던 이탈리아 화가(또는 목수)였다. 그는 당당히 말했다. "나폴레옹이 우리 조국에서 탈취해 간 그림을 되찾았을 뿐이다." 사실은 정당하게 팔린 그림을 그렇 게 말한 까닭이 어디 있었을까. 정말 그는 나폴레옹이 강탈해 갔다고 믿고 있었던 것일까.
문화유산에 관한한 어느 나라 사람이건 애국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훔쳐간 것은 훔쳐서라도 되찾아야겠다는 이 이탈리아 사 람의 행동은 조금 지나치지만 말이다. 정당한 입수 절차를 거친 그림마저 '탈취했다'고 단정하는 전제부터가 애국심의 발로다.
최근에 번역 출판된 구치키 유리코의 '도둑맞은
베르메르'는 문화유산의 도둑이 어떤 배경 아래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구체적 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에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 을 넘어서는 아주 심각한 경우가 나온다.
영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은 '엘긴 마블스'라고 불린다. 1801년
콘스탄티노플 주재 영국대 사였던 엘긴은 터키 정부로부터 파르테논의 발굴 허가를 받는다. 그는 1년 남짓 걸려 대리석 조각을 하나하나 떼어내 영국으로 보냈다. 1815년에는 자기 나라 하원에서 불법 반출이 아니라는 판결까지 받는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엘긴에게 3만5000파운드를 지급하고 이를 사들여 국립박물관에 전시한다.
모든 것이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 같다. 홀로 속이 상하기로는 그리스 정부였다. 눈 뜨고 코 베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리스 정부는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 특히 제3세계권의 후진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해간 데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구치키는 여기서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칼 마이어의 말을 인용한다. 이들 선진국의 논리는 이렇다.
첫째, 구원자의 입장. 제3세계인 산출국의 열악한 환경보다는 선진국의 박물관처럼 시설이 좋은 환경에서 보호하는 것이 파손이 적다고 여긴다. 둘째, 합리화의 입장. 예술적 가치 또는 국민의 감성을 풍요롭게 한다면 모든 비도덕적인 구입조차 정당하다고 믿는다. 모나리자는 루브르에 있기에 안전하게 미소지을 수 있고, 그 미소를 알 만한 사람 앞에서야 미소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 이다. 오만이고 독선이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도 이런 경우에 서 벗어나지 않는다. 규장각의 분점으로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세운 것은 정조 5년(1781)의 일이었다. 이 패기만만한 젊은 왕은 조심성도 높았다. 혹여 본점이 잘못되면 이 분점의 자료로 대신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에 약 1000여종, 5000여책을 소장했다.
왕실에서 만든 책이니 내용도 외양도 모두 훌륭했다. 그러나 세 워진 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아,
병인양요의 화마에 외규장각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겨우 남은 340여종이 바다를 건넜을 뿐이다. 프랑스가 이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까닭은 앞서 엘긴 마블스의 경우를 생각하면 저절로 밝혀진다. 하나하나 내주다보면 루브르박물관이 텅텅 빌 게 뻔하다. 그러나 언제든 돌려줄 때는 온 다. 우리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았고, 우리도 풍요로운 국민의 감성이 필요하다.
[[고운기 / 연세대 연구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