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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논문 썼나?”…알고보니 제자가 대필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6.07.28 21:53



서울시내의 한 대학 시간강사 이모씨(36)는 지난해 말 지도교수의 '명령과 같은 부탁'을 받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도교수의 부탁은 연간 업무평가를 위해 필요한 자신의 발표논문을 찾아달라는 것. "내가 어디에 무슨 논문을 발표했는지 잘 모르겠으니 꼼꼼히 챙겨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도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상당 부분은 이씨의 작품. 이씨는 지도교수가 연구를 진행하라고 지시만 해놓고 한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논문을 짜깁기해 제출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교수가 자기 논문을 어디에 제출한지도 모르고 그 논문이 다른 논문을 베껴서 짜깁기를 했는지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그냥 논문만 있고 발표만 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서울 ㅅ대 석사 재학생 김모씨(29)는 교수들의 논문을 "원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라고 꼬집었다.

올초 한 연구기관으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작성, 제출한 논문제목은 '특정현상에 대한 효용성 연구'였다. 그런데 이 논문은 학회지로 나가면서 '특정현상에 대한 정책결정의 효용성 연구'라고 제목 단어가 바뀌었다. 내용을 손보기는 하지만 참고문헌을 추가하거나 분석 데이터를 재가공해 나온 결과를 보충하는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논문을 제출할 때마다 약간의 손질을 통해 점점 '완성'된 논문이 된다고 비꼬았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2003년 충청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는 '교육사상연구'에 발표한 '니체의 교사론 연구-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2년 후인 지난해 '한국교원교육연구'에 'Nietzsche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타난 이상적인 교육자상 탐구'란 제목으로 게재했다. 본문의 '교사'라는 단어를 '교육자'로 바꾼 것을 빼고는 내용이나 표현이 바뀐 게 없다.

제목 변경이나 내용 손질을 통한 중복제출은 그나마 애교 수준. 이미 발표한 논문의 세부 주제를 따로 떼내 새 논문처럼 '쪼개서' 제출하는 교묘한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2월 ㄱ대 석사과정을 마친 박모씨(30)는 "논문의 소주제를 바탕으로 20쪽 분량의 논문 3편을 만들어 또 다시 학회에 제출했다"면서 "교수가 쓴 논문은 1편이지만 4개의 논문을 쓴 것으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28일 경향신문이 취재한 대학가 논문 표절과 중복제출 실태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했다. 소위 '관행'이라는 이유로, 또는 교수의 능력이 연구논문 숫자와 외부에서 조달한 연구비 규모로 평가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수긍할 수 없는 항변들이다.

이같은 비양심적 행위를 제어하기 위한 자기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내 한 대학의 전임교원인 장모씨(36)는 "일부 명문대의 권위있는 저널을 제외하고는 투고 논문에 대한 심사가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심사를 맡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동업자의식이 있어 '너무 예리하게 하지 말고 살살 가자'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에 따르면 수도권 인근의 ㅇ대에서는 표절행위를 감독해야 할 학과장이 신임교수의 논문을 표절,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들통이 났다.

석사학위만 소유했던 학과장이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은 신임교수의 것과 흡사, 표절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학과장은 "논문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뒤 동의를 얻어 쓴 것이니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논문 내용은 거의 일치했다.

신임교수는 참고한다고 해서 자신의 논문을 빌려줬고 내용이 표절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학과장이어서 항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학과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현재 이 대학의 보직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조현철·임지선·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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